의견 | 상로재(霜露齋)의 유래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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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남박씨의 시조 호장공(戶長公) 휘 應珠와 3세 참의공 휘 윤무(尹茂)를 모신 나주시 반남면에는 예로부터 상로재(霜露齋)가 있었다.

대종중 홈페이지에서 상로재를 검색하면 상로재기(霜露齋記)가 검색되는데, 반남박씨 세적편에 실려있는 상로재기 내용이다.
상로재기(霜露齋記)는 1936년 진사공 풍서(豊緖-서포공파, 父는 勝基)가 지었다고 하며, 그 내용에 의하면 1748년 학생공 사신(師莘-남곽공파, 父는 弼元)이 증조부 찬성공 세해(世楷) 이하 선고(先考)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재실을 건립하였으며, 청하공(淸河公) 충수(忠壽-누군지 확인 불가)가 「霜露齋」라는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상로재(霜露齋)란 이름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하는 글을 찾아볼 수 없다. 종보편집위원장 찬무(贊武)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반남박씨 홈페이지:::)에는 "이 상로재는 묘(墓)옆에 제사(祭祀)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말한다. 우리는 겨울철에 차가우면서도 신선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라고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그러한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상로재(霜露齋)란 이름은 소학(小學) 명륜편(明倫篇) 28장 즉, 예기(禮記) 제의편(祭義篇)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즉,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면 후손들은 그 서리를 밟고 선조들을 뵐 것을 생각하고, 이곳 상로재(霜露齋)에 모여 치재(致齊)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치재(致齊)란 제관(祭官)이 제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제사를 마치는 날까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삼가는 것으로서 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에 '시제(時祭)의 제관은 산재(散齊) 4일, 치재(致齊) 3일, 합계 7일간 재계해야 한다'고 했다. 기제(忌祭)를 지낼 경우에는 산재를 2일간 하고 치재를 1일간 하며, 참례(參禮)할 경우에는 미리 재계하기를 1일간 한다. 이른바 산재(散齊)라는 것은 남의 초상에 조문하지 않고 질병을 문병하지 않으며,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술을 마시되 취하는 데 이르지 않으며, 모든 흉하고 더러운 일에 다 상관하지 않는 것이요.(만일 길에서 흉하고 더러운 것을 갑자기 만나면 눈을 가리고 피하여 보지 말아야 한다) 이른바 치재(致齊)라는 것은 음악을 듣지 않고, 출입하지 않고, 마음을 오로지 하여 제사 지낼 분을 생각하여, 그분이 〈생전에〉 생활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며, 웃고 말씀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좋아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즐기시던 것을 생각함을 이른다. 이렇게 한 뒤에야 제사 지낼 때를 맞이하여 그 모습을 보는 듯하고, 그 음성을 듣는 듯하여 정성이 지극하여 신이 흠향하는 것이다.]
또한 가을 시제(時祭)의 축문에 '氣序流易 霜露旣降'이라 쓰고, 봄 시제(時祭)의 축문에 '氣序流易 雨露旣濡'라고 쓰는 것도 소학(小學) 명륜편 28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 상로재(霜露齋)란 이름의 재사(齋舍)는 의령의 탐진안씨 재사, 영천의 광주안씨 재사, 안동의 풍산류씨 재사 등 여러 문중에서 발견되며, 모두가 같은 의미로 인용하였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다른 이름을 쓴 곳이 있는데 남곽공파의 재사(齋舍)인 이우재(履雨齋)가 그것이다. 이우재(履雨齋)는 「봄에 비와 이슬이 땅을 적셔주면 후손들은 비를 밟고 선조들을 뵐 것을 생각하고, 이곳 이우재(履雨齋)에 모여 치재(致齊)하라.」는 의미이니, 옛날에는 사시제(四時祭)를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8세가 되면 서당에 들어가 소학(小學)을 공부했는데, 소학(小學)은 유학(儒學)의 입문서라고 하며, 4書5經 및 효경(孝經), 동몽훈(童夢訓), 열녀전(列女傳), 사기(史記) 등을 비롯한 중국 고전의 좋은 내용을 발췌하여 어린이 교육용으로 1187년 송나라 주자(朱子-朱熹, 호는 晦菴)가 편찬한 책으로서 5書 중의 하나라고도 말한다.
소학(小學) 명륜편(明倫篇) 28장은 [祭義曰 霜露旣降이어든 君子履之하고 必有悽愴之心하나니 非其寒之謂也라 春에 雨露旣濡어든 君子履之하고 必有怵惕之心하여 如將見之니라 《禮記》〈祭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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